[감상] 칼릴 지브란 -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by 무중력나비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해."

쭈꾸미와 소주를 앞에두고 그는 말했다. 속으로는 뜨끔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해 본적은 언제였을까? 나는 내 행복을 자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나는 스스로가 슬프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는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기억하고, 붙잡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순간들을 떠올리고 붙잡을수록, 그 기억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보다, 내가 그 기억들을 슬프게 만든다는 걸 보았다. 내게 주어진 행복 밑천이 동이 났나보다. 묘하게도 그때부터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오히려 내가 슬프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믿음이었다.

또 그래서였는지 스스로 행복하다는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약한 질투를 느꼈다. 내가 쉽게 말할 수 없는, 그 슬픔의 경험들이, 그들의 삶에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나의 슬픔을 보았었더라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을 거라고 단정지었다. 그들이 나처럼 슬펐고 극복한 사람들이었었더라면, 슬픔이란 주제 앞에서 남들이 다 하는 식상한 말로 위로를 하거나, 어색하게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극복한 사람이었었더라면, 나는 그들을 무척 동경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묘하게 내가 이만큼 슬프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슬픔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그런 사명이라고 느꼈다. 슬픈 사람에게 슬픔을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라도 이해한다는,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다. 슬픔의 표현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화가 났다.

지금은 그래도 내 지인들은 모두 그런 슬픔을 겪어본 나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조금 더 완숙해보이는, 그들의 무표정 되에는 온화함과 슬픔이 묻어있다고 느낀다. 깊이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그것을 느꼈겠고, 중요한 것은 모두가 무표정으로 그것을 덮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끄집어내도, 사람들은 덮으려 했다. 그러면 내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서 부끄러웠고, 나도 그냥 같이 덮었고, 완숙한 무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슬픔을 앞에두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공감이나 하트 버튼이라도 누르지 않으면 죄책감을 안고 간다. 

어쨌거나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서, 내가 내 행복을 자각하지 않게 되었나보다.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행복하다고 잘 말하지 않는가보다.




#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

나는 행복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행복을 잘 표현할 줄도 모른다. 표현은 하지만, 나도 몰래 표현되는, 밝은 목소리 톤이나 표정 밖에 없다. 그냥 나도 몰래 표현되기 때문에 잘 표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되려면, 행복을 많이 느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믿음을 전제로 삼고, 살게 되면, 내가 느끼는 하나하나의 일들이 더 풍성하고 밝게 다가올 것이라고 소망했다.

쭈꾸미와 소주를 앞에 두고, 내가 느낀 말할 수 없었던 감정은, 이런 생각이었다.




#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그대들이 기쁠 때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십시오.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던 그것이, 지금은 기쁨을 주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대들이 슬플때도 마음속을 들여다 보십시오. 진정 그대들은 한 때 기쁨이었던 그것으로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무척 기뻤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이렇게 기뻐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느끼던 슬픔은 이별의 슬픔이었다. 정말 나의 슬픔을 들여다보니 내가 사랑했을 때의 기쁨이 보였다.

그 다음에 내가 바라보았던 것은 나를 형성한 그 힘든 시기의 슬픔이었다. 그것은 언젠간 기쁨이었던 것이 슬픔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언젠간 기쁨이 될 그런 슬픔이었다. 

드디어, 슬픔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슬픔을 극복한 사람들을 소망했지만, 찾지 못해서 답답해하던, 나의 그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걸 목격하고, 칼릴 지브란을 정말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믿는다.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런 사람이고. 행복하기만을 바라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그걸 바라지 않는게, 오히려, 행복한 일만 벌어지는 삶을 사는 거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할 거라고, 믿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 둘은 서로 나눌 수 없습니다. 둘은 함께 찾아오니, 하나가 그대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있을 때, 다른 하나는 그대들의 침대에 잠들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칼릴 지브란 - <예언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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