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속의 사나이 by 무중력나비

# 상자 속의 사나이, 베리코프


오늘 감상할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상자 속에 든 사나이>>입니다.

이 세상에는 꿀벌이나 달팽이처럼 자기 집 속으로 들어가려고만 하는 천성이 은퇴적인 사람이 적지 않지요.

제목이 가르키는 건, 소심한 그리스어 교사, 베리코프라는 인물인데, 참 특이한 프로필의 사람이에요. 누구나 소심해 본 적이 있겠지만, 이 사람은 약간 강박이 있었습니다. 맨날 덧신을 신고, 우산을 쓰고 다니고, 항상 모든 것에 보호막 같은 것을 달도 다녔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일이 그릇될까봐 불안해하고...

요컨데 이 사나이에게서는 항상 무엇으로라도 몸을 감싸는, 말하자면 자기를 외계의 영향에서 격리시켜 보호해줄 상자 같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좀처럼 타파하기 어려운 변함없는 성벽을 엿볼 수 있었단 말입니다. 현실은 그를 초조와 공포 속에 몰아 넣었고, 끊임없는 불안 속에 허덕이게 했습니다. 자신의 소심증과 현실에 대한 증오를 변호하기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나이는 언제나 과거를 찬미했고, 남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칭찬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참 피곤하게 여겼어요. 솔직히 조금 찌질하다고,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번 사랑에 빠졌습니다. 어떤 건강하고 호탕한 노처녀 바르바라 사브비시나 랑요. 그런데 자기가 용기를 내어 마음이 생길 적에, 동네방네 그걸 풍자하는 만화가 한번 돕니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못차리다가 한번 크게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그 노처녀분의 오빠한테 모욕을 당하면서요. 그런데 바라바라 사브비시나가 참, 순진하게도, 그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베리코프 씨는 끙끙 앓다가 사망합니다. 관속에 누워있었던 모습이 편안했다고 하는군요.

# 상자는 경계, 나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나를 속박하는 무엇.

저는 가끔 글을 쓸 때, 아 이렇게 이렇게 쓰면 되겠다는, 그런 양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양식이 있다면, 그대로만 쓰면 글을 빨리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런 양식이 있다면, 내가 글을 쓸 때 말이 안되거나, 실수하거나, 흐름이 이상하거나, 전달을 놓치는 부분들이 발생하는 걸,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양식을 찾아보거나 만들어서 따라쓰려고 하면, 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요. 양식을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적게 되는 건 내가 생각나는대로 적습니다. 그래야지만 쓰고 나서 뭔가를 썼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글 쓰는 것 외에도, 정형화된 틀이나 양식은 안정되게 하면서, 답답하게 하는 것 같아요.


# 누구나에게 상자는 있다

우리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중학교 교사 불킨씨입니다. 자기는 이러이러한 베리코프씨를 알았다고. 밀로노시코예 마을, 이장댁 부인 마브라는 마을 밖을 벗어나본 적도 없고, 집에만 있고, 밤이 어두울 때만 외출한다구요. 어쨌거나 불킨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각자 편하게 느끼는, 경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리코프라는 사람도 있고, 마브라같은 사람도 있다고요. 

사실 베리코프 씨의 이런저런 강박과 잔소리들은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베리코프 씨 곁에만 가도 이미 긴장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의 장례식 이후엔 모두가 해방감을 느꼈대요.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답답해하기 시작했지만요.
사실 사람들이 다시 답답해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숨막힐 지경으로 답답한 거리에서 살며, 필요 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 놀이를 하는 것도 역시 상자와 다름없는 일이 아닐까요? 또 우리가 게으름뱅이, 수다쟁이, 영리하지 못하고 체신 없는 부인들과 일생을 보내며, 쓸데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것도, 일종의 상자가 아닐까요?

결국에는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느꼈던 건, 베리코프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냥 각자 자기 자신의 상자를 느꼈던 거에요.


# 그래서 상자를 어쩔 것인가.

그래도 베리코프가 바르바라에게 다가갈 때만큼은, 자신의 상자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것만이, 상자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않을까요?

인간관계에 대해서 느끼는 텐션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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